이 블로그는 네타 함유한 감상 블로그로 쓸 예정입니다.

예정인 이유는 지금껏 쓴 글의 양이 눈물나는 수준이기 때문.

어쨌든 모든 감상문에는 네타가 함유될 예정이니 주의하세요!

another... 미안 보고 뿜었...

작품 네타 있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좋아하는 작가고 어나더는 표지도 워낙 예쁘고 간지나서 얼른 질렀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작가가원했던 청춘호러추리물이라는 목적 달성은 좀 실패 한 것 같다고 평가하고 있... 아니 이 이야기를 하려 했던게 아닌데.

아무튼 애니화 된다고 해서 기대했고 디자인이 이토라서 음... 했고 메이 디자인을 보고 울었... 아니 이 이야기도 아니고 아무튼 그래도 최근 애니화할 소스가 다 떨어졌나 이젠 라노베뿐만 아니라 영어덜트계 작품들이 애니화가 잘되네. 요네자와 작품도 애니화되고(그러니까 고전부 시리즈랑 소시민 시리즈 제발 정발좀. 아니 소시민 시리즈는 포기하고 일판 질렀으니 나오면 억울할지도...) 다다미도 애니화됐으니 이제 밤은 짧아 시리즈만 되며... 도대체 처음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어디로 간거야!

위에 헛소리는 제끼고 아무튼 어나더를 애니화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생각했던게 그 '트릭'을 어떻게 하느냐는 거였다. 서술 트릭물이 영상화되면 서술만으로 치는 장난이 통할리가 없다. 정보의 통제를 통해 독자를 가지고 노는게 서술트릭의 묘미인데 영상이라는 엄청난 정보 폭풍속에서 정보 통제가 가능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서...솔직히 영상으로 보면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임을 모를리가 없잖...

...미안, 애니 제작진. 나 당신들을 우습게 여긴 것 같아.



시발 화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장이란 렌즈랑 머리에 컬 넣은 걸로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만들어놨엌ㅋㅋㅋㅋㅋ 다 알고 보는 나도 몰라보겠엌ㅋㅋㅋㅋㅋㅋ

본인은 이렇게 생애 처음으로 화장트릭(...)이라는 새로운 트릭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진짜 현실적인 부분이긴 한데... 웃음이 멈추지 않는 건 왤까... 나 이제 이거 호러로 볼 수가 없을 것 같아....ㅠㅜ

돌아가는 펭귄드럼 완

역시 이쿠하라랄까. 이해는 못해도 분위기로 으엉...;ㅁ;하며 완결을 달렸다.

우테나도 그랬지.. 처음 봤을 때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아무튼 최고고 멋지고 으앙...;ㅁ;ㅁ;ㅁ;ㅁ;했던 기억이..

운명의 과실을 같이 먹자 부분은 칸바 쇼마든, 링고든 다 으아..;ㅁ;ㅁ;ㅁ;ㅁ;하며 봤고
마지막 불타는 운명이 갈라선 부분에서 다시 으아아아아앙...;ㅁ;


대충 여러가지 글을 보고 좀 이해가 가서 이야기를 써보자면

핑드럼=나누어진 과실=사랑

이게 확실하게 정해진 건 물론 아니고 이놈의 감독이 워낙 다방으로 해석이 가능하게 하는 편이라 다른 식으로도 해석 가능하겠지만 아무튼 이게 가장 유력한 것이라고 본다.

펭귄드럼에서 특이한 부분이라면 역시 내면 묘사의 연출인데 이걸 보통 애니에서 말이나 혹은 행동으로 대부분 표현한다면 이 감독은 이게 세계에 상징의 형태로 표출된다. 그래서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사건의 중간 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거야!?!?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개연성은 이런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그 과정에서 현실성은 <내면세계의 표출이니까> 무시된다. 즉, 따지면 지는 겁니.. 예를 들어 히마리가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도서관에서 지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칸바가 마사코를 떠올리는 장면은 케이크와 옷의 등장 등으로 나타난다. 그런점에서 볼 때 칸바와 쇼마가 굶어죽어가던 상자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이 세계에서 죽어가는(혹은 브로일러에 들어간다는 식) 외로운 세계를 나타낸다고 본다.
그러나 사실 칸바는 선택(사랑) 받았고 상자 속에는 그가 알지 못하던 사과가 있었다. 참고로 부모의 사랑은 아닐거라고본다. 칸바의 부모는 그를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그렇다고 타카쿠라 부부가 사랑했냐 하면... 쇼마도 없는 사랑이 칸바에게 갔을리가. 아마도 가장 유력한 것은 마사코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칸바가 마사코를 구원->마사코의 사랑이 칸바에게 사과로 돌아감. 이라는 형태 역시 돌아가는 핑드럼이라는 제목에 어울린다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렇게 사과가 있어서 굶어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된 칸바. 그러나 쇼마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죽을(투명한 존재)상황에 되고 그래서 칸바는 사과(사랑)을 나누며 말한다.

운명의 과실을 함께 먹자.

그리고 쇼마는 그 과일을 투명해져가던 히마리에게 나누어주었고(시간상 개념으로는 안 맞지만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 작품에 현실성 따지지 말라니까...) 히마리는 그 과일을 엔딩에서 칸바에게 돌려준다. 그리고 그 힘으로 칸바는 다시 히마리 구원.
이렇게 사랑은 돌아가는 것이다. 펭귄여왕 모모카가 바로 이런 세계의 시스템을 의미한다.

반대로 폭력 역시 세계를 돌아간다. 어린이 브로일러에서 투명하게 조각난 유리조각들은 칸바에게로 걸어가는 히마리를  상처입힌다. 사랑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들은 굶어죽어가면서 그 세상에 증오를 표출한다. 심지어 모모카에게서 사과를 받은 타부키와 유리마저 모모카의 죽음 이후 사랑=사과에 굶주리며 타카쿠라가에 폭력을 휘두르는데 단 한번도 사과를 얻지 못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이라면 옆에 있는 아이의 사과가 얼마나 탐이 날까. 그렇기 때문에 그 사과를 빼앗으려 세계에 폭력(테러)를 일으키는 것이다. 24화에서 칸바의 몸에서 터져나가는 피-사과들은 바로 그가 폭력으로 빼앗은 사과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사랑받지 못했던 타부키와 유리는 어른이 되고 그들은 가진 사과가 없기 때문에 또다시 아이들에게 사랑=사과를 주지 않는다. 굶주린 아이들은 폭력을 휘두른다. 폭력은 사과를 가진 아이들로부터 사과를 빼앗아 그 아이들이 또다른 굶주린 아이들로 만든다. 이렇게 세계는 끊임없이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사네토시의 시스템이다.

그러나 링고는 이 시스템을 끊어버린다. 일본어로 링고는 사과를 뜻한다. 이름대로 사는 아이랄까. 링고는 작중 인물 모두가 그렇듯 사랑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이다. 먼저 죽어버린 언니의 환생으로 취급되며 태어나 똑같이 사과에 굶주려 그것이 타부키에 대한 스토킹으로 표현되는 아이. 그러나 그녀는 작중 누구로부터도 사과를 받지 않고 홀로 사과를 만들어낸 아이이기도 하다.(모모카를 제외하고) 부모에게도 사과는 없었고, 타부키로부터도, 그 누구도 그녀에게 사과를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혼자 쇼마를 사랑하고 타카쿠라가의 폭력의 피를 끊어버린다. 그리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겠다 한다. 그런 그녀에게 사과를 받았기 때문에 가족애라는 사과만을 가지고 있었던 쇼마는 그 사랑에 감사하며 기꺼이 그녀의 벌(운명을 바꾸는 행위)을 대신 받아준다. 이 역시 사랑의 시스템이다.(링고-쇼마에게로 사랑-링고에게로 사랑)

그리고 이렇게 사랑은 돌아가고 이 것이 사회로 돌아가 폭력의 연쇄를 끊어낸다.

과연 이쿠하라랄까. 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돌아가는 사과를 바로 한차원 업그레이드 시켜 세계의 시스템으로까지 넓혀버렸다. 칸바를 사네토시의 대리인으로 활용함으로서 이 가족 단위에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세계로 이어져 운명이 바뀌고 테러를 없에 세계의 폭력의 연쇄를 끊어버리는 식이랄까. 즉 개인의 구원과 사회의 구원을 이런 형태로 동시 이룩한 셈인데... 우테나의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

그 외에도 워낙 떡밥이랄까 상징이 많아서 이야기할 것은 많다만 일단은 패스. 언젠가 정리가 된다면 이걸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반년간 정말 재미나게 봤다. 그러니까 다들 펭귄드럼 보세요.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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